호기심 많은 달팽이의 이야기
이것은 제가 달팽이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제 갓 사회 초년생이 되기 까지의 이야기 입니다.
어느 날, 넓기만 한 세상에 한없이 작기만 한 아이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무척 겁이 많았기에 자신과 다르게 생긴 생명체들을 정말 무서워했습니다.
부리부리한 눈, 무시무시하게 큰 턱, 굉음을 내는 날갯소리, 뾰족한 발톱,
톱날같은 앞다리, 괴이한 울음소리, 설령 크기가 작더라도 압도적인 수...
이러한 생명체들의 근처에 가면 언제라도 자신을 물어뜯을 것 같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아프게 만들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와중에, 부모님께서 절대로 탈출할 일 없다며 잡아준 여치가 탈출했던 경험, 유치원 소풍 날 거미가 옷에 붙어 공포로 혼자 낙오됐던 경험 등 유쾌하지 않은 일은 계속 쌓여만 갔습니다.
그러던 비가 그친 뒤의 어느 날, 아파트 옆 테니스 장에서 넘어온 테니스공을 줍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그는 아파트 벽면에 붙은 이상한 생명체를 발견했습니다.
모난 데 없이 달덩이 처럼 둥글고 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껍데기, 말랑거릴 것 같은 몸체,
이리저리 흔들리는 가녀린 더듬이, 여지껏 봐온 세상 그 어떤 벌레보다 느린 움직임...
처음에는 살짝 놀랐지만 느릿느릿하고 자신보다도 더 나약하게 생긴 모습이 도저히 자신을 헤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자, 이내 경계를 풀며 호기심을 갖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처음으로 자신과 다른 생명체를 자세히 관찰하게된 그는 여러 궁금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여기서 뭐하고 있는지, 왜 저렇게 생겼는지, 몸은 왜 이렇게 말랑 거리는지, 왜 이렇게 느린지, 그리고 이름은 무엇인지. 그 아이는 이 생명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집에 데려가 부모님께 여쭤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결심하고 조심스럽게 달팽이를 잡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순간, 난생 처음 경험하는 사늘한 온도와 끈적거리는 촉감에 너무 당황해서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곧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의 눈빛은 더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인생 처음으로 호기심이 두려움을 넘어선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이 생명체가 달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집에 있던 책을 통해 달팽이에 대해 더 알게 되었습니다. 풀을 먹는다는 것 그래서 종이도 먹을 수 있다는 것, 먹은 먹이에 따라 똥의 색이 변한다는 것, 물이 없거나 잠을 잘 때는 껍데기 속으로 들어가버린다는 것, 칼날 위도 기어다닐 수 있다는 것 등 새로운 지식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든 생각, '정말 그럴까?' 라는 질문과 함께 직접 시도해봤습니다. 달팽이가 먹는 종이의 맛이 궁금해서 자신도 먹어보기도 하고, 무지개색 똥을 만들어 보려고 여러 먹이를 조금씩 주기도 하고, 잠자는 달팽이에게 분무기를 뿌려 깨우기도 하고, 칼날과 밤송이를 기는 달팽이를 보고 자신도 만졌다가 베여서 피가 나기도 하고... 등
그 아이는 달팽이라는 생명체를 알게된 것을 계기로 주변의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서서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식물이라는 것, 동물이라는 것, 곤충이라는 것 등. 어느새 비온 뒤 아파트 벽면에서 달팽이를 만나는 것은 그의 일상이 되었고, 동네 또래들 사이에서 유명한 곤충 덕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변함없을 줄 알았던 일상이 그 아이가 모르는 사이 조금씩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아파트 벽면에서 등장하는 달팽이가 줄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린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놀이터 주변 낙엽 밑 흙속에 가득했던 풍뎅이 유충들도 사라지고, 화단에 앉는 잠자리가 줄어서 잠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저 멀리 단지까지 나가야 했고, 맨손으로 잡던 매미는 더 이상 큰 잠자리채가 없으면 잡지 못할 만큼 높은 곳에만 붙어 있었고, 보이지는 않아도 간간히 들리던 개구리 소리가 작아지고, 멋진 위용을 뽐내는 사마귀와 알락하늘소, 정말 거대한 방아깨비가 더 이상 안보이고, 집 안의 골칫거리였던 개미들은, 언젠가 7층 문에서부터 계단을 통해 1층 화단까지 이어진 행렬을 만들어 줄지어 나간 것을 마지막으로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한 그 아이는 생에 처음으로 현상에 대한 최초의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어째서 달팽이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이상한 현상에 대해 주변의 또래와 어른들께 물어봤지만 "달팽이가 뭐야?", "거기에 원래 달팽이가 있었니?", "아직도 그런 것에 관심을 갖니?" 와 같은 답이 돌아왔을 뿐 그의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 아이는 커가면서 점점 더 그 생명체들을 만날 수 없었으며, 이는 자신의 동심이 예전만 못해서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마치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요정을 볼 수 없는 피터팬의 동화 이야기 처럼. (물론 여전히 아이에 불과했지만)
이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믿었던 그 아이는, 진학하여 학업경쟁에 뛰어들면서 더 심해졌고 결국 그가 가졌던 무수한 호기심은 빛을 바래기 시작했고 정말로 달팽이를 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의미한 경쟁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그는 다시금 달팽이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어느 순간에 달팽이를 다시 생각해냈는지 기억나지 않았으나, 다만 집에서 떨어진 멀리 어느 장소에서 갔다가 우연하게 달팽이들이 가득한 것을 보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곳은 어릴 적 아파트 벽면처럼 달팽이가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어째서 이 곳에는 달팽이가 아직 많은지 궁금하기 시작했고, 이후 자연과 생태라는 것에 대해 새롭게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 아이는 현재 커서 그때 그 어릴 적의 질문을 간직한 채 지금까지 달팽이에 대해 관심갖고 주변의 자연을 관찰하며 연구하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 작은 아이에게 호기심을 가르쳐준 그 달팽이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그때 왜 달팽이들이 사라졌는지 그 이유를 이해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달팽이에 대해 모르는 것들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호기심 많은 한 달팽이의 이야기 입니다.